오늘 저녁, 세 식구가 처음으로 ‘횟집’이라는 곳에 갔다. 짜장면 한 그릇 시켜먹는 것도 못마땅해 하시는 아버지와 삼시 세 끼 눌은밥만 드시는 어머니, 그리고 그 두 분이 낳은 가난한 아들. 오늘은 가족사에 길이 남을 세 가족의 ‘횟집’ ‘최초방문’의 날이었다. 회사 회식 때 가을 전어 한 점 먹어보고 부모님 생각을 했던 아들이 몇 날 며칠을 바람 잡아 기어이 모시고 간 횟집이다. 그나마도 ‘실비횟집’. 얼마나 주기에 전어회 한 접시가 만 원인지. 쯔끼다시가 없어 만 원이란다.
손바닥만한 접시 위에 올려 있는 몇 점 안 되는 전어회 조각들. 아들은 ‘이러니 만 원이지.’하고 생각했지만, 부모님은 신기한 듯 가을 전어를 맛보신다. 만 원짜리라도 향긋한 전어맛은 그대로였다. 그나마 다행. 아들은 꽁지쪽부터 만지작대시는 부모님을 향해 “맛있지? 맛있지?”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. 그래도 좋아하시는 것 같아 빨리 먹고 하나 더 시켜야지 생각했다.
그런데, 만 원짜리 전어회 한 접시를 앞에 두고 온가족이 저마다 핑계가 있다. 아버지는 동네 아저씨와 무얼 드시고 오셨다고 하신다. 어머니는 낮에 주전부리를 많이 해서 배가 안 고프다고 하신다. 그래서 손바닥만 한 접시 만 원짜리 전어회는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는다. 저녁밥도 안 먹었는데 세 식구가 오도카니 전어회 한 접시를 앞에 두고 모두가 배부르다 주장한다. 그래서 아들은 소주잔만 비워댔다. 전어 회 한 접시도 다 비우지 못한 우리 가족의 외식은 삼십 분 만에 끝이 났다.
아들은 속이 터져 기어이 돌아오는 길에 한마디 하고야 말았다. “다음부터는 엄니, 아부지랑 나가서 뭐 안 먹어!” 부모님의 마음을 다 알면서도 결국 가시 돋친 한마디를 하고야 말았다. 아들은 나중에 이날을 떠올리면 자기가 한 말에 더 가슴 아플 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한마디를 내뱉은 것이다. 가족이 돌아온 집안은 찬물을 뿌려놓은 것처럼 고요했다. 아무도 즐겁지 못했던 배고픈 외식이었다.
왜 서로에게 상처주고, 왜 서운한지 서로가 너무 잘 안다. 그러나 누구 하나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. 어제와 조금은 다른 오늘을 기도하며 살았지만, 우리에게는 내일도 오늘과 같을 것이다. 우리 가족은 그렇게 가난에 적응하기 위해 살아왔다. 그리고 가난은 분명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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